인터뷰

인간사의 시작은 언제 가능한가?

2026년 04월 24일

인간사의 시작은 언제 가능한가?
- 기본소득에 대한 질문 - 우리는 지금 ‘일이 사라지는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더 빠르게 배우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낸다. 생산성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지만, 그 결실이 인간 모두에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오히려 부와 권력은 특정 플랫폼과 자본에 더 강하게 집중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된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고, 불안정한 노동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제도. 그러나 이 제도가 과연 ‘인간사의 시작’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인간 관리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될 것인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종종 단순한 찬반으로 나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보다 깊다. 기본소득이 지급된다고 해서 인간이 곧바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어떤 구조 위에서 작동하느냐다. 만약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막대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된 채 유지되고, 다수의 사람들은 일정한 금액을 분배받는 데 그친다면, 기본소득은 생존을 보장하는 대신 질문을 멈추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인간은 굶지 않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방향에 대해 발언할 권리를 점점 잃어간다. 그때 기본소득은 해방이 아니라 조용한 안정, 다시 말해 통제된 평온으로 기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사의 시작은 언제 가능한가. 그것은 단순히 생존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 아니다. 인간사의 시작이란 인간이 다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과 ‘의미’를 타인이 아닌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생존의 반복에서 벗어나 삶의 방향을 구성하는 존재가 된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조건을 준비하는 출발선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목적지는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사의 시작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해진다. 첫째, 생산의 결과에 대한 참여권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빠진 채 이루어지는 단순한 분배는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시키지 못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부에 대해 시민이 일정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배당의 형태이든, 공동 소유의 형태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생산 결과에 참여하는 구조다. 둘째, 시간의 재구성이다. 노동이 줄어든다고 해서 삶이 곧바로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남는 시간이 소비와 오락으로만 채워진다면 인간은 노동에서 벗어났을 뿐 여전히 소비자로 남는다. 인간사의 시작은 그 시간이 사유와 창작, 관계와 돌봄으로 확장될 때 가능하다. 시간은 단순히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소비는 생산의 대체물이 아니라, 인간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셋째, 의미의 회복이다. 인간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지를 묻는 존재다. 기본소득이 이러한 질문을 가능하게 할 때 그것은 해방의 제도가 된다. 그러나 이 질문을 약화시키거나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정교한 관리 시스템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맑스가 말한 ‘인간사의 시작’이라는 개념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맑스는 인간이 자연과의 생존 투쟁에서 벗어나고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면, 비로소 인간다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 보았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생존을 위해 강제된 노동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 기대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생산력의 발전은 인간 해방의 조건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인간사의 시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집중과 통제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함께 품고 있다. 결국 맑스의 ‘인간사의 시작’은 생산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도래하는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다시 질문을 시작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라는 공동의 질문이 사회 전체로 확장될 때, 인간은 비로소 새로운 역사의 문턱에 선다. 기본소득은 그 문 앞에 놓인 하나의 열쇠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을 해방으로 이끄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체제를 유지하는 장치가 될지는 우리가 어떤 구조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질문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