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실패를 축적하는 태도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문인 이동준은
일상의 장면과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주목 받는 작가다.
실험노트의 대부분은 실패로 채워져 있다.
정답에 도달한 한 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틀린 기록이다.
지워지지 않은 오답들, 빗나간 가설들, 끝내 이어지지 못한 문장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실패를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깔끔한 결과만 남기고, 틀린 과정은 지우는 것이 더 나은 태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문제 앞에 다시 서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다시 틀리고 있었다.
그때서야 알게 됐다.
나는 실패를 버린 것이 아니라,
실패를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토머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라고.
그 말은 위로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훨씬 더 냉정한 선언이다.
실패를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다루겠다는 태도.
실험노트는 바로 그런 태도로 쓰인다.
틀린 이유를 남기고, 실패한 조건을 기록하고,
다시는 그 길로 가지 않기 위해 선을 긋는다.
그러니까 실험노트란 결국,
정답을 적는 공간이 아니라
틀린 길을 지도처럼 그려나가는 공간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써왔다.
한 번에 완성되는 문장은 거의 없었다.
같은 문장을 두세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고치면서
조금씩 덜 틀린 문장으로 바꿔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종종 스스로를 탓했다.
왜 이렇게 한 번에 제대로 쓰지 못할까,
왜 이렇게 작은 실수가 많을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수정의 흔적들이야말로
내가 도달할 수 있는 문장의 범위를 좁혀온 과정이었다는 것을.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방향이다.
틀렸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틀렸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문장은 조금 덜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실패를 지우지 않는다.
틀린 문장들을 아래에 깔고, 그 위에 다음 문장을 쌓는다.
실패한 문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축적’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은
내 문장을 받쳐주는 거름이 되고, 받침대가 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내부공사처럼.
나는 실패한 글들을 실험노트처럼 남겨둔다.
틀린 문장도, 어색한 표현도, 빗나간 시도도
그대로 두고 바라본다.
어쩌면 내가 쌓아온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목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목록 덕분에
나는 더 이상 같은 자리에서 틀리지 않는다.
실패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축적이 방향이 된다.
나는 이제 실패를 줄이려 하지 않는다.
대신, 실패를 기록한다.
그것이 언젠가 나를 정확한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걸,
이미 여러 번의 틀림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