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지은 하루

응원봉은 왜 각자 다르게 빛나는가: 군중 속의 개별화

2026년 05월 05일

응원봉은 왜 각자 다르게 빛나는가: 군중 속의 개별화
- 386 이후의 정치: 거대 서사 속 개인 캐릭터... - 왜 요즘 응원봉은 점점 더 화려해질까. 왜 우리는 같은 팀을 응원하면서도, 각자 다르게 빛나고 싶어 할까. 야구장에서 사람들은 같은 색을 입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팀을 외친다. 그 순간 우리는 분명 ‘하나’가 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두가 똑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응원봉을 다르게 꾸미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원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동일한 과거의 야구문화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오늘의 사회는 ‘소속 밖의 불안’이 점점 감정적으로 엄습하는 구조다. 관계는 느슨해지고, 기준은 사라지고, 개인은 끊임없이 비교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래서 집단을 찾는다. 야구장은 그런 점에서 가장 안전한 집단이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부담 없이 소속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집단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형태의 압력이 생긴다. 모두가 같은 색을 입고 같은 행동을 할 때, 개인은 쉽게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집단에 속하되,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응원봉이다. 응원봉은 집단의 일부로 빛나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존재를 표시하는 도구다. 외침도 아니고 침묵도 아닌, 가장 안전한 거리의 자기표현이다. 이 구조는 정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현대의 선거정치는 한편으로는 강하게 집단화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점점 더 뚜렷한 진영으로 나뉘고, 선거는 견해차가 존재해야 함에도 ‘어느 편인가’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불안한 개인들은 정치적 소속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선명한 노선이다. 강한 메시지와 분명한 방향은 사람들을 빠르게 묶어낸다. 집단은 이렇게 형성된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도 더 이상 단순한 집단 동일성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진영 안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세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경험에 따라 정치적 언어는 달라진다. 누군가는 역사와 이념으로 말하고, 누군가는 공정과 감정으로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지와 캐릭터로 정치에 접근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개인 캐릭터화’다. 후보는 더 이상 단순히 정당의 얼굴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스타일이자, 하나의 해석 방식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 역시 같은 진영에 속하면서도 각자의 이유로 지지한다. 정치적 선택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선택의 이유는 점점 더 개인화되고 있다. 결국 오늘의 선거정치는 이렇게 움직인다. 선명한 노선은 사람들을 모은다. 개인 캐릭터는 그 안에서 차이를 만든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동시에 작동한다. 집단은 안정감을 주고, 개인화는 존재감을 보장한다. 유권자는 진영을 통해 불안을 줄이고, 후보는 캐릭터를 통해 집단 속에서 자신을 구별한다. 이것이 바로 ‘군중화 속의 개별화’다. 우리는 하나로 모이면서도, 하나가 되기를 거부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려 한다. 야구장의 응원봉이 그러하듯, 오늘의 정치 역시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결국 현대 선거정치는 이 균형 위에 서 있다. 진영은 표를 모으고, 캐릭터는 표를 움직인다. 정치가 단순히 선명한 노선만 강조하면 군중은 모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 개인은 쉽게 소모된다. 반대로 개인화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집단은 결집력을 잃고 분열한다. 결국 오늘의 정치에 던져진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함께 서 있으면서도, 각자의 이유로 빛날 수 있는가?’ 응원봉은 같은 색을 내면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빛난다. 그 미묘한 균형을 정치가 답하지 못한다면, 유권자는 스스로 그 방식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