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와 결
헝거 제로와 비만과의 전쟁: 먹거리 불균형의 두 얼굴
세계는 오랫동안 ‘헝거 제로(Zero Hunger)’라는 목표 아래 기아 퇴치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늘날 인류는 또 다른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바로 비만이다. 한쪽에서는 굶주림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잉 섭취와 초가공식품으로 건강이 무너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두 문제는 정반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기아와 비만은 모두 먹거리 불균형이 만들어낸 같은 위기의 두 얼굴이다.
UN에 따르면 전 세계 약 7억 명 이상이 만성적인 기아 상태에 놓여 있으며, 동시에 20억 명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 문제를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식량 부족이나 개인의 식습관 문제가 아니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성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결과다.
오늘날 저소득층일수록 값싼 초가공식품에 더 쉽게 노출된다. 당분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지만, 장기적으로 비만과 당뇨, 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 반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 양질의 단백질은 상대적으로 비싸고 접근이 어렵다. 결국 기아와 비만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한 쌍둥이 같은 위기다.
따라서 해결책 역시 단순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덜 먹자”거나 “더 먹자”는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음식의 양이 아니라 음식의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탕세(sugar tax)는 그런 점에서 중요한 정책적 실험이다. 멕시코는 2014년 설탕음료세 도입 이후 탄산음료 소비 감소 효과를 경험했고, 일부 국가들은 이를 비만 예방 정책과 연계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금을 걷는 것 자체가 아니다. 과잉 소비에서 발생한 재원을 다시 건강한 먹거리 시스템으로 환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 재원은 아동 무료 급식, 지역 푸드뱅크, 건강 식료품 바우처, 취약계층 영양 지원 등에 연결되어야 한다. 과잉을 줄인 자원이 결핍을 채우는 방향으로 흐를 때 비로소 사회적 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 중심의 공공 먹거리 정책도 중요하다. 핀란드는 오래전부터 학교 무료 급식과 영양 교육을 결합해 아동 건강과 학습 효과를 동시에 높여왔다. 브라질 역시 지역 농가와 학교 급식을 연결하는 정책을 통해 건강한 식재료 공급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함께 이끌어냈다. 먹거리 정책은 단지 복지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배부름의 의미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배부름은 단지 위장이 채워진 상태가 아니다. 불안이 줄어들고, 고립감이 완화되며, 삶의 리듬이 회복되는 상태까지 포함해야 한다. 정신적 배부름과 물리적 배부름은 분리될 수 없다.
외로운 노인에게 따뜻한 한 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되는 감각이 될 수 있다. 불안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건강한 식사는 자기 돌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결국 음식은 칼로리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매개이기도 하다.
헝거 제로와 비만과의 전쟁은 서로 다른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먹거리 불균형에 맞서는 하나의 싸움이다. 미래의 식량 정책은 결핍과 과잉을 따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통합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많이 먹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헝거 제로의 출발점이다.